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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나종덕→투수 나균안 "롯데 팬들 기립박수 소름 끼쳤죠"

타자 뒤에 서다 앞에 서니 야구 인생이 바뀌었다. 롯데 자이언츠 포수 나종덕에서 변신한 투수 나균안이 활짝 날개를 펼쳤다.지난 9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1-6으로 뒤진 6회 초 나균안이 마운드를 내려가자 롯데 팬들이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팀은 크게 뒤졌지만, 멋진 투구를 했기 때문이다.선발 이승헌이 1회에만 4실점해 급하게 나선 나균안은 6회 2사까지 5이닝 5피안타 2실점했다. 최고 시속 145㎞의 포심패스트볼과 컷패스트볼, 포크볼을 섞어 개인 최다인 10개의 탈삼진을 잡았다.열흘이 지났지만 나균안은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는 "팀이 지고 있는 상황인데도 박수를 보내주셨다. 소름끼쳤다. 그런 환호를 오랜만에 받아서 정말 기분좋았다. 경기 끝나고도 여운이 오래 가더라. 가족들도 굉장히 좋아했다"고 말했다.나균안은 "롯데 팬들이라 그런 환호가 가능했다. 우리 선수들도 관중 입장과 육성 응원이 돼 힘을 많이 받는다. 지고 있어도 팀 분위기가 팬들 덕분에 뜨겁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몇 년 전까지 그는 환호보다 비난을 더 많이 받는 선수였다. 2017년 마산용마고를 졸업한 그는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롯데 유니폼을 입단했다. 당시 포지션은 포수. 2014년 1년 선배 김민우(한화 이글스)와 함께 노히트노런을 만들었고, 청소년 대표로도 활약한 대형 유망주였다.때마침 주전포수 강민호가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면서 나종덕은 프로 2년차 때부터 1군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2년간 팀내 포수 중 가장 많은 128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수비는 물론 타격에서까지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나균안은 "잘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기간이 길어서 힘들었다"며 "첫 해엔 '괜찮아지겠지'란 마음이었지만 나중엔 야구장에 나오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가끔 기사 댓글을 봤는데, 상처받진 않았다. 가족에 대한 비방이 있을 땐 가슴 아팠지만, 현실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2020년 투수가 됐다. 성민규 롯데 단장은 왼손목 골절 부상을 입은 나균안에게 전향을 권했다. 중학 시절까지 투수를 한 적이 있지만, 포수가 천직이라 생각한 나균안은 아쉬웠지만 받아들였다. 1년 동안 2군에서 투수와 포수를 함께 했다. 이름도 '종덕'에서 '균안'으로 바꿨다. 개간할 균(畇)자에 기러기 안(雁)자. 노력한 만큼 더 높이 오르라는 의미였다.지난해 나균안은 포수 미트를 내려놓았다. 1군에서 투수로 경쟁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제구력을 끌어올리면서 지난해 5월 1군 데뷔전을 치렀고, 6월엔 선발로 나와 데뷔 첫 승까지 거뒀다. 2020년 결혼한 그는 11월엔 딸 리율까지 얻었다. 연봉도 4300만원에서 5800만원으로 인상됐다.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고 다짐한 나균안은 더 강해졌다. 아직 세 경기만 치렀지만 7이닝 동안 삼진을 무려 15개나 잡았다. 아웃카운트 3분의 2 이상이 삼진이다. 임경완 롯데 불펜코치는 "빠른공 구속이 지난해보다 2~3㎞ 향상됐다. 그러면서 포크볼의 위력도 좋아졌다. 타자들 입장에선 배트가 따라나갈 수 밖에 없게 됐다"고 했다.지난 14일 광주 KIA전도 뜻깊었다. 딸의 육아를 도와주는 장인, 장모님 앞에서 1과 3분의 2이닝 4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펼쳤다. 나균안은 "부모님과 처가 식구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아직 딸이 어린데 제가 야구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신다"고 했다.메이저리그 현역 최다 세이브를 거둔 켄리 잰슨(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KT 위즈 김재윤도 포수에서 전향한 사례다. 둘은 강력한 구위를 앞세워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나종덕은 다양한 구종을 앞세운 '기교파'에 가깝다. 임경완 코치는 "포수 출신인데도 손재주가 좋아 투수 입문 2년 만에 다양한 변화구를 익혔다. 포수로서 경험 덕분에 타자 심리도 잘 읽고, 영리하다"고 했다. 사실 포수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지운 건 아니다. 나균안은 "투수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도 미련이 있었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평생 해왔던 포지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 내 포지션은 투수고, 1군에서 팀에 도움이 되어야 하니까 그런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고 했다. 팬들은 제구력이 좋은 그를 '나덕스(나종덕+그렉 매덕스)'라고 칭찬하기도 한다. 잰슨과 합친 '종덕 잰슨'이란 별명도 있다. 하지만 나종덕이 가장 좋아하는 건 '나균덕'이다. 투수 균안과 포수 종덕이 합쳐진 이름이다. 나균안은 "나덕스보다는 친근감 있고 듣기 좋다. 팀원들도 균덕이라고 자주 부른다. 선배님들이 급하게 포수가 없는 상황이 되면, 나종덕으로 유니폼 갈아입고 나가라는 동담도 하신다"고 웃었다. 나균안의 야구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아직 그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더 많다. 더 많이 마운드에 오르고, 기회가 된다면 태극 마크도 달고 싶다. 나균안은 "아직은 완벽한 1군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소중하다"고 했다.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2022.04.2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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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의 리플레이] "공 던져볼래?" 입원 중이던 나균안의 야구 인생을 바꾼 전화 한 통

롯데 투수 나균안(23). 2020년 3월 그는 나종덕이었다. 포지션은 포수였다. 손목 수술 후 병원에 입원 중이던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리고 그의 야구 인생을 확 바꿔 놓았다. 당시 나균안은 호주에서 한창이던 스프링캠프 연습 도중 타석에서 스윙하다 왼 팔목에 이상을 느꼈다. 현지 병원 진단 결과 왼 팔목 유구골(갈고리뼈) 골절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같은 소식. 2년 동안 안방에서 고생했고, 트레이드를 통해 경쟁자 지성준(현 지시완)까지 합류한 터라 절치부심하며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균안은 할 수 없이 캠프에서 중도 귀국해 수술대에 올랐다. 병원 입원 중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발신인은 롯데 성민규 단장. 성 단장은 대뜸 "공 한번 던져볼래?"라고 제안했다. 본격적인 투수 전향을 의도한 건 아니었다. 재활 기간 배트를 휘두를 수 없으니 기분전환 겸 가볍게 공을 던져보라는 것이었다. 나종덕은 흔쾌히 답했다. "네." 사실 '포수 나종덕'은 마음고생이 컸다. 2017년 롯데 2차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입단했다. 1·2차 지명을 통틀어 포수로는 가장 높은 순번이었다. 2018년 강민호가 삼성과 FA(자유계약선수) 계약으로 팀을 떠나면서, 롯데 안방은 무주공산이나 마찬가지였다. 프로 2년 차 나균안이 대체 1순위였다. 2018년에도, 2019년에도 롯데 포수 중 가장 많이 마스크를 썼다. 하지만 주전으로 완벽하게 도약하지 못했다. 타격(2018~19년, 210경기 타율 0.124)도 약했지만, 포수로서 안정감이 떨어져서다. 단지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2019년 롯데가 기록한 폭투는 103개. 리그 평균 59개를 훌쩍 넘겼다. 투수 영향도 있었으나, 롯데 포수진의 기본기 부족이 지적됐다. 팀 성적도 2017년 정규시즌 3위에서 2018년 7위, 2019년 꼴찌로 곤두박질치면서 포수진을 향한 따가운 시선은 계속됐다. 나균안을 괴롭힌 건 외부의 시선과 비난이 아니다. 자신에게 큰 실망감 때문이다. 그는 "내가 '왜 이것 밖에 안 되지' '원래 이런 선수가 아니었는데'라며 자책했다. 그래도 유망주 포수로 입단했는데 제대로 된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하고 구단과 팬에 정말 미안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포수(강민호)가 있었던 자리가 엄청나게 크더라.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임했는데, 쉽지 않고 힘들었다. 그걸 이겨내지 못했다. 내가 부족했다. 인정한다"라고 돌아봤다.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면서도 투수 전향을 확정짓지 않고, 미련이 남은 포수로 더 뛰기로 했다. 성민규 단장이 기억하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렇다. "처음부터 나균안의 투수 전환을 고려했다. 공을 던지는 모습이나 어깨를 보면 투수 자질이 엿보였다. 하지만 포수로 성장 중인 선수에게 함부로 이를 제의할 수 없었다. 계속 찬스를 엿봤다. 캠프에서 부상으로 재활 기간을 갖게 돼 '빌드업을 할 겸 (마운드에서) 공을 한 번 던져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하지만 재활 기간 막바지 나균안은 포수로 더 뛰고 싶어 했다. 실제 퓨처스리그에 포수로 뛰며 홈런도 쳤다. 가장 중요한 게 선수 의견이고, 현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설득 과정이 필요해 보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다시 물었다." 나균안이 성 단장에게 답했다. "포수로서 자신감보다 마운드에서 자신감이 더 큽니다. 투수로 전환하겠습니다." 성민규 단장의 깜짝 제안은 나균안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중학교 때 마운드에 오른 적은 꽤 있었지만, 고교 시절에는 전혀 없었다. 그는 2020년 6월 투수 전향과 함께 나종덕에서 나균안으로 개명하고, 퓨처스리그에서 착실히 선발 수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2군 15경기에 등판해 65⅔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3.29로 합격점을 받았다. 올 시즌에는 선발 투수로 투구 이닝을 늘려가며 호투했다. 2021년 5월 2일, 나균안은 데뷔 이후 처음으로 투수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사흘 뒤인 5일 홈 사직 KIA전에 등판해 본격적인 새 출발을 알렸다. 첫 이닝 아웃카운트 3개를 모두 내야 땅볼로 처리, 깔끔하게 출발했다. 그는 "장내에 내 이름이 소개됐고, 팬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들렸고 몸 속에서 아드레날린이 올라왔다"라고 회상했다. 5월 15일 KT전에선 5이닝 4피안타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 요건을 갖췄으나, 불펜진의 난조로 첫 승 기회를 놓쳤다. 이어 1일 고척 키움전에서 6⅔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롯데의 6연패 탈출을 이끈 이는 투수 전향 1년도 채 안 되는 그였다. 1~2군을 통틀어 개인 한 경기 최다이닝, 최다 투구 수(95개)를 기록했다. 나균안은 "교체 후 마운드를 내려오는데 팬들의 환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잘 던졌구나'라며 뒤돌아볼 수 있었다"라고 흡족해했다. 나균안은 투수 전향이 1년도 되지 않았으나 6가지 구종을 던진다. 직구와 투심, 커브, 슬라이더, 포크볼, 체인지업까지 구사한다. 1일 키움전 7회말 1사 1루에서 서건창을 포크볼 3개로 3구 삼진을 잡아낸 장면이 압권이었다. 여기에 제구력까지 갖췄다. 올 시즌 1~2군에서 총 34⅔이닝을 던지는 동안 볼넷은 9개에 그쳤고, 탈삼진은 26개를 기록하고 있다. 팬들은 나균안과 '컨트롤의 마법사' 그레그 매덕스의 이름을 결합해 벌써 그를 '나덕스'라고 부른다. 그는 "'나덕스'라는 별명은 처음 들어본다"며 쑥스러워했다. 하지만 팬들은 물론 동료들도 마운드를 내려온 그에게 "우리 팀 1선발 같다"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가족의 존재는 그에게 힘이 된다. 나균안은 "투수 전환 때 부모님이 굉장히 아쉬워하셨다. 부모님 생각이 나 갑자기 울컥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김예은 씨와 결혼한 나균안은 "내가 힘들고 방황할 때 아내가 힘이 되어줬다. 장인어른-장모님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내가 (야구를) 잘하는 것 같다"라고 고마워했다. 또한 성민규 단장은 "은인"이라고 표현했다. 나균안은 구단, 팬들에게 약속했다. "이제는 포수 유망주가 아닌 투수 유망주입니다. 투수로 도움이 되겠습니다." 고척=이형석 기자 lee.hyeongseok@joongang.co.kr 2021.06.03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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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김식 기자 ‘선동열 야구학’ 시리즈, 체육기자상 기획상 수상

본지 김식 기자가 기획한 ‘선동열 야구학’ 시리즈가 2020년 4분기 체육기자상 기획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돼 22일 시상식을 열었다. ‘선동열 야구학’ 시리즈는 일간스포츠 창간 51주년 특별기획으로 제작됐으며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총 10회에 걸쳐 연재됐다. 이 시리즈는 ‘국보 투수’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이 본인의 선수, 지도자로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야구 데이터를 재해석해서 풀어낸 스토리다. 해외야구를 망라하는 깊이 있는 분석과 현장 경험이 풍부한 지도자만이 던질 수 있는 날카로운 해석으로 야구계에 큰 울림을 줬다. 특히 “후배들을 조련하고 육성하는 게 아니라 소통해야 한다”는 자기반성의 메시지는 야구팬들에게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한국체육기자연맹이 선정한 2020년 4분기 체육기자상 보도 부문은 OSEN 이종서 기자의 ‘프로야구 선수협 고위 간부 판공비 개인 사용 의혹 논란’과 KBS 신수빈 기자의 ‘맷값 폭행 아이스하키 협회장 당선 파문’ 기사가 선정됐다. 이은경 기자 관련기사 ①강속구의 시대, 한국 야구는 왜 소외됐나 ②속도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중요하다 ③강속구의 대응 무기는 정말 '어퍼컷'일까 ④플라이볼은 목표인가 결과인가 ⑤타격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난 타자를 믿는다 ⑥류현진은 '피치 터널'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⑦류현진·매덕스는 타자의 0.045초를 훔친다 ⑧구창모는 '볼끝'이 좋은 게 아니다 ⑨트레버 바우어는 '공이 긁히는 날'을 만든다 ⑩난 후배들을 잘못 가르쳤다 '야구 소년'과의 1년 여정을 마치며 2021.02.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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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 야구학] ⑦류현진·매덕스는 타자의 0.045초를 훔친다

“나는 투수들의 피칭을 지켜봤다. 그 가운데 한 명인 왼손 투수 스티브 에이버리는 시속 153㎞가 넘는 빠른 공을 던졌다. 그의 커브는 크게 휘었다. 아주 위력적이었다. 다른 한 명은 오른손 투수였다. 포심 패스트볼, 투심 패스트볼,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던졌다. 그는 대학생 투수 수준보다는 나아 보였다. 그러나 특별하지 않았다. 위력적이지 않았다.”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 전문 사이트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가 2017년 게재한 기사의 리드 부분이다. 포수보다 3~4m 뒤에 앉은 기자는 두 투수의 살아 있는 공을 봤다. 왼손 투수는 무서울 만큼 강해 보였고, 오른손 투수는 그저 그랬다고 한다. 그 기자가 ‘대학생 수준보다 조금 낫다’고 평가한 투수는 그레그 매덕스(54)이다. 매덕스는 메이저리그(MLB) 역사상 최초로 4년 연속(1992~95년) 사이영상을 받았다. 17년 연속(1988~2004년) 15승 이상, 20년 연속 10승(1988~2007년) 이상을 기록하는 등 MLB 통산 355승(227패 평균자책점 3.16)을 거둔 전설적인 투수다. 기자는 참 이상했을 것이다. 매덕스의 피칭이 겨우 이거라고? 뭔가 특별한 무기를 숨긴 것 아닐까? 이렇게 의심했을 것이다. 매덕스는 기자에게 “이것이 내가 가진 전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변화구는 크고 빠르게 꺾이는 게 중요하지 않다. 내 변화구는 늦게, 빨리 꺾이는(late quick break) 것이 목표다. 공이 많이 꺾이기 위해서는 방향을 일찍 바꿔야 한다. 그만큼 타자에게 생각하고 반응할 시간을 준다. 투구의 변화가 늦게 일어나면 타자가 대응할 시간이 적어진다. 투구에 대한 정보를 타자에게 최대한 늦게 줘야 한다.” 이어 매덕스는 “모든 투구는 서로 가까워 보여야 한다. 투수가 던지는 모든 공이 홈플레이트를 향하는 ‘우유 기둥(column of milk)’처럼 보이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모든 투구가 가까워 보인다는 건 패스트볼과 변화구의 궤적 차이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구종에 따라 공의 궤적은 당연히 달라진다. 그러나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어느 지점까지는 비슷하게 비행해야 한다는 게 매덕스의 주장이었다. 그가 비유한 ‘우유 기둥’을 떠올려 보자. 우유를 컵에 따르면, 기둥처럼 한 줄로 내려오다가 점점 갈라질 것이다. 야구공도 흰색이니까 여러 투구를 겹쳐 놓는다면 우유 기둥과 비슷한 모양이 될 것이다. 매덕스는 크게 꺾이는 변화구보다 패스트볼과 비슷한 궤적의 변화구를 던지려고 노력했다. ‘타자에게 보이는 것’보다 ‘타자를 속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매덕스의 피칭을 스피드와 변화 각만으로 감상한다면, 기자가 그랬던 것처럼 ‘대학생 투수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고 오판할 수 있다. 그러나 타석에 선 MLB 선수들은 매덕스의 공을 20년 가까이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매덕스는 모든 공을 ‘비슷한’ 궤적으로 던지려 노력했다. 그러나 ‘똑같은’ 공은 하나도 던지지 않았다. 타자들은 매덕스의 공을 칠 수 있다고 배트를 휘둘렀겠지만, 대부분 빗맞거나 헛스윙을 했다. 매덕스는 타자의 성향과 심리·볼카운트 등을 고려하면서 공을 다양하고, 현란하게 던졌다. ‘우유 기둥’ 안으로 모든 공을 밀어 넣었다. 기둥이 넓게 퍼진 뒤에는 타자가 이미 속은 뒤였을 것이다. 매덕스가 ‘우유 기둥’이라고 이름 붙인 이 투구 이론은 오늘날 피치 터널과 다르지 않다. 그는 이미 20~30년 전에 모든 투구 궤적은 최대한 가까워야 한다는 걸 알았고, 이를 자신의 피칭에 적용했다. 매덕스 별명 중 가장 유명한 건 ‘컨트롤의 마법사’다. 그의 포심 패스트볼 대부분은 시속 140㎞대였다. 그러나 무브먼트가 뛰어난 투심 패스트볼로 타자를 압도했다. 30대 나이가 되어 구위가 떨어진 뒤 매덕스는 컷 패스트볼, 체인지업 등을 추가했다. 구종이 다양해진 덕분에 매덕스의 전성기는 더 오래 이어졌다. 만 41세에도 샌디에이고 유니폼을 입고 14승을 올렸다. 매덕스의 피칭을 다양성과 정확성으로만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그는 타자를 속일 줄 알았다. 그 핵심 기술이 20세기의 ‘우유 기둥’, 21세기의 ‘피치 터널’이다. 매덕스가 ‘우유 기둥’을 말한 이유 매덕스의 스토리는 류현진(33·토론토)과 닮았다. 지난해 LA 다저스에서 뛰었던 류현진은 5월 8일 애틀랜타를 상대로 9이닝 93개의 공을 던지며 4피안타 무사사구 6탈삼진 무실점 완봉승을 거뒀다. 외신들은 “류현진이 ‘매덕스 게임’을 완성했다”고 썼다. ‘매덕스 게임’이란 투구 수 100개를 넘기지 않고 9이닝을 완봉으로 막아낸 경기를 뜻한다. 매덕스가 투구 수 100개 미만으로 완봉승을 기록한 경기는 통산 13차례(완봉승 35번)나 된다. 류현진이 지난 시즌 중반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할 때, 여러 외신과 MLB 관계자들은 그를 매덕스와 비교했다. ESPN “새로운 그렉 매덕스? 건강한 류현진이라면 거의 그렇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류현진과 ‘매덕스 게임’을 함께 이룬 포수가 러셀 마틴이었다. 그는 2006년과 2008년 매덕스와 배터리를 이룬 적이 있다. 마틴은 “류현진이 던진 공 93개 중 58개를 받을 때 미트를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만큼 제구가 완벽했다는 뜻이었다. 러셀은 류현진의 투구는 매덕스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난 이런 말들이 류현진에 대한 많은 평가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특급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매덕스의 투구에는 힘과 기술뿐 아니라 전략과 통찰력까지 담겨있기 때문이다. 우리 선수들이 시속 100마일(161㎞) 이상의 공을 뿌리는 아롤디스 채프먼(뉴욕 양키스)이 될 확률보다 류현진처럼 성장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지난 칼럼에서 피치 터널의 원리에 대해 설명했다. 터널이라는 공간적인 개념뿐 아니라 시간적인 측면에서 이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버트 어데어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의 저서 『야구의 물리학』은 투수와 타자의 ‘시간 싸움’을 잘 설명하고 있다. 투수판과 홈플레이트의 거리는 18.44m다. 투수가 스트라이드를 해서 공을 던지기 때문에 릴리스 포인트와 타자의 히팅 포인트의 거리는 약 17m다. 어데어 교수는 투수가 시속 145㎞의 패스트볼을 던진다고 가정했다. 이에 따라 타자가 해야 할 일을 시간별로 계산했다. 패스트볼이 17m를 날아가는 시간은 0.4초에 불과하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타자 시야에 들어오기까지 0.1초가 걸린다고 한다. 이후 타자가 공의 속도와 궤적을 파악하는데 0.075초가 더 필요하다. 이제 타자의 시간으로 가보자. 사람의 눈이 강한 빛에 반응해 깜빡하는 데 0.15초가 걸린다. 타자가 공을 보고 타격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면, 두뇌가 근육에 신호를 보내는 시간(0.03초)이 필요하다. 따라서 타자마다 차이는 있지만, 스윙에는 0.18초가 소요된다. 타자가 어프로치를 한 이후에도 투구를 보면서 스윙을 조금 수정하거나 멈출 순 있다. 그러나 타자가 스윙을 일단 시작했다면, 타이밍과 궤적은 거의 정해졌다고 봐야 한다. 다시 정리해 보자. 타자가 투구를 파악하는 최소 시간(0.175초)과 타자가 스윙하는 최소 시간(0.18초)이 필요하다. 두 시간을 더하면 0.355초다. 이론상 투구의 비행시간인 0.4초 중에서 0.045초의 시간이 타자에게 더 있는 셈이다. 이건 판단하는 시간이다. 이 찰나의 시간에 타자는 스윙 여부를 결정한다. 타자가 투구의 궤적을 예측했다면 0.045초가 필요 없을 수 있다. 타자들이 시속 145㎞의 패스트볼은 물론 160㎞의 강속구도 공략하는 이유다. 투수 입장에서는 타자에게 주어진 0.045초를 최소화하거나 없애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투수가 더 빠른 공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160㎞ 이상의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심지어 그것조차 완벽한 방법이 아니다. 타자의 물리적인 시간을 빼앗을 수 없다면? 타자의 시야를 흔들어서 타자의 시간을 훔쳐야 한다. 그 방법이 바로 스트라이크와 볼을 구분하기 어렵게 공을 던지는 것이고, 피치 터널을 최대한 길게 만드는 것이다. 류현진은 시간과 공간을 지배한다 긴 터널을 만드는 데 마법이 필요한 건 아니다. 이전 칼럼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터널에 들어가기 전에 투구의 방향과 속도는 이미 정해져 있다. 안정적인 폼으로 일정한 릴리스 포인트를 만드는 게 피치 터널의 시작이자 끝이다. 이 재능은 강속구를 던지는 것보다 더 귀중하다. 속도만이 무기가 아니다. 류현진처럼 시간과 공간을 잘 활용하면 세계 최고의 투수가 될 수 있다. 시간을 이용한다는 말은 일정한 템포로 던진다는 걸 뜻한다. 어떤 공을 어디에 던져도 폼의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 같지만, 수준급 투수에게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는 동작이 빨라지는 경향이 있다. 커브 같은 느린 변화구를 던질 때는 템포가 느려진다. 투수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피칭 템포가 완벽하게 똑같은 투수는 없다. 타자는 투수의 템포에 타이밍을 맞춘다. 눈썰미가 좋다면 구종도 예측할 수 있다. 투구 템포는 데이터로 나오지 않지만, 타자가 미묘하게 느낄 순 있다. 매덕스나 류현진도 동작의 템포가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타자의 시간을 빼앗는 이들의 능력은 완벽에 가깝다. 피치 터널은 '공간 싸움'이다. MLB 통계 전문 사이트 ‘브룩스베이스볼’을 보면 류현진의 릴리스 포인트는 일정하게 형성된 것을 볼 수 있다. 9월 25일 뉴욕 양키스전 데이터를 보면, 그의 릴리스 포인트 높이는 구종과 관계없이 180㎝ 선에서 거의 일정하다. 수평 릴리스 포인트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몸에서 가장 가까운 포인트에서 던지는 커브(62.8㎝)와 가장 먼 체인지업(75.3㎝)의 차이는 최대 12.5㎝다. 이 정도 차이는 타자의 눈으로 식별하기 어렵다. 또 하나. 류현진의 릴리스 포인트 편차를 보고 폼이 흔들렸다고 보기 어렵다. 똑같은 폼으로 던져도 하이 패스트볼이나 커브를 던질 때는 공을 조금 일찍 놓기 때문이다. 타자의 몸쪽과 바깥쪽을 번갈아 공략할 때도 팔 각도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투구 폼은 같고, 내딛는 발의 방향이 몇㎝ 달라지는 것이다. 류현진은 그런 수준에서 피칭하고 있다. 2020년 류현진은 리그와 홈구장이 바뀐 상황에서도 일정한 릴리스 포인트를 형성했다. 또 투구 템포의 차이가 거의 없고, 백스윙 때 디셉션(공을 숨기는 동작)이 뛰어나다. 타자 입장에서는 미리 준비할 게 별로 없다. 스윙하기도 전에 타자의 승률이 낮아지는 것이다. 여기에 류현진처럼 좋은 폼으로 정확하게 던졌다면 공은 깜깜한 터널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타자의 0.045초를 훔칠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투수는 강속구 없이도 타자를 압도할 수 있다. 매덕스의 나이가 30대 후반이었던 2000년대 초, MLB는 배리 본즈(56)의 시대였다. 그는 2000년 이후 4년 동안 무려 213홈런을 때렸다. 금지 약물 복용 사실로 인해 얼룩지긴 했지만 본즈는 MLB 통산 최다 홈런(762개)을 기록한 강타자다. 본즈의 최전성기(2000~2003년)를 매덕스는 피안타율 0.222(18타수 4안타)로 막았다. 홈런은 하나도 내주지 않았다. 본즈는 훗날 방송 인터뷰에서 “매덕스는 0볼-2스트라이크에서 (3구 삼진을 잡겠다고) 들어온다. 그가 파워피처가 아니면 누가 파워피처인가”라고 되물었다. 매덕스와 본즈의 대결을 보면, 류현진과 마이크 트라우트(29·LA 에인절스)가 떠오른다. 지난해 류현진 피칭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6월 10일 에인절스전에서 트라우트를 세 번이나 잡은 장면이었다. 1회 직선타에 이어, 3회에는 삼진 처리했다. 류현진은 5회 2사 1·3루 위기에서 트라우트를 다시 삼진(컷 패스트볼)으로 잡아냈다. 현역 최고 타자인 트라우트를 통산 10번 상대해 무안타(4탈삼진)로 막아낸 류현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배트를 헛돌린 트라우트의 실망한 표정이 기억난다. 20대 나이에 통산 302홈런을 때렸고, MLB 최고 몸값(12년 총액 4억 2650만 달러·5000억원)을 받는 트라우트가 류현진의 ‘파워 피칭’에 압도당했다. 투수의 파워는 속도만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는 힘이 투수의 중요한 역량이다. 관련기사 ①강속구의 시대, 한국 야구는 왜 소외됐나 ②속도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 중요하다 ③강속구의 대응 무기는 정말 '어퍼컷'일까 ④플라이볼은 목표인가 결과인가 ⑤타격은 불가능에 대한 도전…난 타자를 믿는다 ⑥류현진은 '피치 터널'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2020.10.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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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류현진은 어떻게 빅데이터 시대 괴물이 됐나

“오늘은 무척 쉬웠다. 그가 원하는 코스로 던지게 해주면 그만이었다.” 지난 1일 메이저리그(MLB) 콜로라도 로키스 원정경기에서 LA 다저스가 5-1로 승리한 뒤 다저스 포수 윌 스미스(24)가 한 말이다. 스미스는 류현진(32)과 처음 호흡을 맞춘 소감을 “야구가 쉬웠다”는 말로 요약했다. 이날 경기는 ‘투수들의 무덤’ 쿠어스필드(해발 1600m)에서 열렸다. 콜로라도 타자들은 6월 29일 같은 곳에서 홈런 3개(4이닝 9피안타 7실점)를 때리며 류현진을 무너뜨렸다. 33일 만의 리턴매치에서 류현진은 6이닝 3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스미스 말을 통해 류현진이 어떻게 이 경기를 준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류현진은 타자·이닝에 따라 공 배합을 모두 다르게 계획했다. 또 컷패스트볼(커터)을 평소보다 느리게, 대신 낙폭이 크게 던졌다. MLB닷컴에 따르면 이날 투구 80개 중 커터가 26개였다. 대부분 ‘슬라이더 같은 커터’였다. 류현진의 커터는 평균 시속 140㎞로 왼손 타자 바깥쪽으로 살짝 꺾인다. 쿠어스필드에서는 평균 시속 132㎞의 커터를 던졌는데, 변화 폭이 슬라이더만큼 컸다. 류현진은 “좌타자에게 슬라이더를 던진 게 주효했다”고 밝혔다. 2014년 체인지업의 위력이 떨어지자 류현진은 슬라이더를 제2의 구종으로 활용했다. 2017년 커터를 익힌 뒤로는 슬라이더를 던지지 않다가 오랜만에 비장의 무기로 썼다. 류현진이 쿠어스필드에서 던진 커터는 콜로라도 타자들 ‘메뉴판’에 없었다. 예전의 커터보다 더 꺾이는 공에 타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커터가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같은 팀 감독조차 식별하기 어려운 류현진의 이 구종으로 인해 상대 타자는 더 혼란스럽다. 류현진을 상대로 통산 10타수 무안타(4삼진)인 MLB 최고 타자 마이크 트라우트(28·LA 에인절스)는 “류현진이 세 종류의 슬라이더를 던진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MLB 전체 평균자책점 1위(1.53)인 류현진이 지금의 페이스로 시즌을 마치면 21세기 MLB 투수 중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의 주인공이 된다. 조정 평균자책점(각 시즌 투수의 평균 능력을 100으로 정하고 우열을 가리는 지표)을 봐도 라이브볼 시대(공의 반발력이 높아져 타자에게 유리해진 시기)가 시작된 1920년 이후 류현진은 MLB 역대 2위(272)에 해당한다. 조정 평균자책점 역대 1위는 2000년 페드로 마르티네스(291)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 같다고 해 ‘외계인’으로 불렸던 마르티네스는 마구 같은 체인지업으로 강타자들을 압도했다. ‘마스터’란 별명을 가진 그레그 매덕스는 현란한 투심패스트볼을 던졌다. 매덕스가 류현진에 이어 역대 조정 평균자책점 3, 4위(1994, 95년)다. 현재 MLB에는 시속 160㎞의 강속구 투수가 흔하다. 구장 곳곳에서 속도전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진짜 승자는 MLB 투수 평균 패스트볼(시속 150㎞) 속도에도 미치지 못하는 공을 던지는 류현진이다. 리그를 뒤흔들 무기는 없어도, 4가지 구종을 모두 정교하게 구사하는 덕분이다. 팬그래프닷컴에 따르면 올 시즌 류현진의 패스트볼(7.9), 체인지업(17.5), 커터(3.4), 커브(1.0)의 구종 가치는 MLB 평균(0) 이상이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MLB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과학화가 되어 있다. 데이터를 직접 연구하고 릭 허니컷 투수코치에게 발표할 만큼, 류현진이 상대 분석을 열심히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경기 중에 류현진이 수첩을 보고 데이터를 참고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류현진은 제구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데이터를 잘 활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MLB는 정보 그 자체보다 정보 활용 능력이 중요한 ‘오픈북’ 시험장이다. 공유된 정보를 바탕으로 완성도 높은 답안지를 제출하는 게 빅데이터 시대의 최고 경쟁력이다. 이 시험에서 류현진은 현재 단연 세계 1등이다. 온라인 일간스포츠 2019.08.0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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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속구 시대를 살아가는 느린 공 투수들

2014년 11월 1일, 마르코 에스트라다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11월의 첫 날, 밀워키 브루어스 소속이던 그는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됐다. 상대는 왼손 거포 아담 린드였다. 그는 좀처럼 하지 않던 일을 하기로 했다. 인터넷 기사와 댓글을 살펴보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데려간 토론토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야기를 읽다 말고 전의를 불태웠다.2008년, 카일 헨드릭스도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6월의 드래프트에서 LA 에인절스가 그를 지명했다. 문제는 그가 39라운드에서 뽑혔다는 것이었다. 카피스트라노밸리 고교 3학년이던 헨드릭스의 구속은 겨우 시속 80마일(128km)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다. 고민 끝에 그는 아이비리그 명문 다트머스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몇 년 뒤를 기약하면서.2006년을 기점으로 메이저리그는 한동안 투고타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투수들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93마일(153km)을 넘어섰다. 뉴욕 메츠 에이스 노아 신더가드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98마일(158km)에 달한다.그러나 에스트라다와 헨드릭스는 강속구 시대를 거스르고 있다. 두 명 모두 빠른 공의 평균 구속이 시속 90마일에 미치지 않는다. 에스트라다의 주무기는 시속 89마일(143km/h) 포심 패스트볼이다. 헨드릭스의 주무기는 시속 88마일(142km/h) 싱커다. 규정이닝을 채운 선발투수 중에서는 구속이 한참 밑바닥에 있다.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 순위에서 에스트라다의 이름 밑에 있는 5명 중 2명은 너클볼 투수다.그럼에도 둘은 나름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에스트라다는 지난해 34번 등판해(28선발) 181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3.13을 기록했다. 후반기 팀 선발진 중에서 3번째로 평균자책점이 좋았다. 이를 바탕으로 토론토와 2년 연장 계약에 합의했다. 올해도 151⅔이닝을 던지며 8승 8패 평균자책점 3.68을 기록 중이다.헨드릭스는 더 극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다. 올시즌 165이닝동안 14승 7패 평균자책점 2.07을 기록했다. 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단독 선두다. 시속 89마일 싱커의 헨드릭스가 시속 100마일 싱커를 던지는 노아 신더가드와 사이영상 경쟁을 펼치고 있다. 2년 전 처음 등장했을 때 잘해야 3~4선발급으로 여겨지던 것을 생각하면 상전벽해다.둘의 성공은 구속에 매달리지 않은 철저한 자기 분석 덕이었다. 에스트라다와 헨드릭스는 모두 느린 공을 가진 투수다. 하지만 탁월한 체인지업을 바탕으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고 있다. 더불어 에스트라다는 ‘라이징 패스트볼’로 배트의 위를, 헨드릭스는 ‘싱커’로 배트의 아래로 공을 비껴가고 있다.에스트라다는 지면에 수직에 가깝게 팔을 들어올려 공을 던진다. 이때 걸리는 회전이 만들어낸 공기 저항이 공을 ‘덜 떨어지게’ 만든다. 마치 공이 솟구치는 듯한 착시효과가 일어나고, ‘라이징 패스트볼’이 탄생한다.에스트라다의 패스트볼은 분당 2404회 회전한다. 리그 평균인 2264회, 클레이튼 커쇼의 2278회보다도 더 높다. 타자가 낮은 볼이라고 인식한 순간, 솟구치는 듯한 움직임 때문에 공은 스트라이크 존의 아래쪽에 걸쳐 들어온다.‘솟구치는 공’에 나간 배트는 공의 밑동을 때리기 십상이다. 그 결과 플라이볼이 양산됐다. 에스트라다가 허용한 타구 중 플라이볼 비율은 리그 최고 수준인 46.7%다. 힘없이 솟구친 플라이볼이 수비수가 가장 잡기 쉬운 공이라는 건 두 말할 필요도 없다.여기에 에스트라다는 최고 수준의 체인지업까지 보유했다. 체인지업의 피안타율은 리그 평균인 0.241보다 훨씬 낮은 0.162에 불과하다. ‘솟구치는’ 패스트볼과 ‘느리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의 조합은 에스트라다를 컨택트의 마술사로 만들었다. 에스트라다의 공을 쳤을 때 인플레이가 된 타구의 타율(BABIP)은 0.232에 불과하다. 리그에서 2번째로 좋은 성적이다.에스트라다가 ‘라이징 패스트볼’로 타자의 방망이 위쪽을 공략한다면, 헨드릭스는 반대로 ‘떨어지는 공’으로 방망이 아래를 공략한다. 헨드릭스의 주무기 싱커는 아래로 떨어지는 빠른 패스트볼이다. 두번째 무기인 체인지업 역시 마찬가지다. 헨드릭스는 아래로 떨어지는 공을 스트라이크 존 아래로 무자비하게 꽂아 넣는다. 투수의 교과서와도 같은 표어인 ‘낮게 더 낮게’를 실천한 전술이다.헨드릭스의 싱커와 체인지업 구속은 시속 8마일(12km/h) 차이가 난다. 그러나 두 구종의 회전수는 분당 1966회와 2111회로 상당히 비슷하다. 두 공의 회전축도 거의 같다. 타자 입장에서는 비슷한 회전을 가진 공이 다른 빠르기와 다른 낙차를 가지고 들어온다. 육안으로 구별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싱커 타이밍에 배트를 냈는데 한 박자 늦게, 그보다 더 낙차가 큰 체인지업이 들어오는 당혹스러운 경험이 계속된다.설령 배트에 맞아도 떨어지는 공에는 정타가 나오긴 힘들다. 그 결과 헨드릭스가 허용한 타구에는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타자의 눈과 타이밍을 흐트러트리고 제구에 집중하니 주자를 내보내는 일 자체도 적어졌다. 헨드릭스의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는 0.92로 메이저리그 2위에 올라 있다. 1위는 사이영상 수상 경력이 있는 워싱턴의 맥스 슈어져다.그들의 2014년, 2008년은 그 느린 공만큼이나 암울하고 천천히 지나갔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느린 공을 던지는 그들에겐 누구보다도 찬란한 후일담이 기다리고 있었다.트레이드 날 ‘모두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겠다’고 마음먹은 에스트라다는, 1년 뒤 1승 3패로 내몰린 팀의 가을 야구 명운을 짊어지고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에 등판했다. 전날 14득점 맹폭을 가한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방망이는 연신 허공을 갈랐다. 8회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그를 팬들은 비난이 아닌 환호성으로 맞이했다.아이비리그 명문 다트머스에 진학한 헨드릭스는 3년 뒤 8라운드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그로부터 5년 뒤, 헨드릭스는 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1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제 팬들은 그를 ‘교수’라 부른다. 그의 시카고 컵스 선배,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투수 ‘마스터’ 그렉 매덕스에게 붙었던 바로 그 별명이다.박기태(야구공작소)야구 콘텐트, 리서치, 담론을 나누러 모인 사람들. 야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2016.09.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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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인사이드] 매덕스가 불독(Bull dog)이 못된 이유

LA 다저스의 300승 투수 그렉 매덕스의 별명은 &#39매드 독(Mad Dog)&#39이다. 서부지구 1위 자리를 힘겹게 지키고 있는 LA 다저스는 리그 최다승의 뉴욕 메츠와 원정 4연전 첫 2경기에서 1승씩 나눠 균형을 이뤘다.  그런데 매덕스가 선발 등판한 10일 3차전에서 이상한 투수 교체가 이뤄졌다.  LA 다저스가 2-1로 앞선 6회말 수비다. 1사 후에 호세 발렌틴이 매덕스로부터 2루타를 뽑아 1사2루가 됐다. 동점 주자가 진루한 것이다. 리틀 감독은 위기임을 느끼고 마운드로 나가 매덕스를 만났다. 그의 투구 수는 68개였다. 리틀 감독은 덕아웃으로 돌아오더니 다음 타자인 스위치히터 카를로스 벨트란을 상대로 &#39고의 4구&#39 작전을 펼쳤다. 이것부터 이상하다. 6회에 역전 주자를 고의 4구로 진루시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이 다음 타순은 뉴욕 메츠의 4번 좌타자 카를로스 델가도와 폭발적인 상승세의 우타자 데이비드 라이트로 이어진다. 내셔널리그 최강인 뉴욕 메츠의 4,5번 타자를 뒤에 두고 고의 4구를 지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렉 매덕스를 좌완 팀 해물럭으로 교체했다. 4번 카를로스 델가도가 좌타자였기 때문이다. 리틀 감독의 심오한(?) 시나리오는 1사 1,2루 병살 상황을 만들어놓고 왼손 투수 해물럭이 좌타자 델가도를 병살타로 유도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델가도는 병살타가 아닌 중견수 플라이를 쳐 투아웃이 됐으나 타구가 깊어 주자들이 진루해 2사 2,3루가 됐다. 다음은 위협적인 우타자 데이비드 라이트로 리틀 감독은 믿을 수 있는 우완 브래드 톰코를 투입했다. 브래드 톰코는 볼카운트 2-2에서 던진 스트라이크가 볼 판정을 받으면서 흔들렸고 승부구로 던진 시속 96마일(154㎞) 패스트볼이 결국 2타점 역전 중전안타가 돼 다저스는 2-3으로 역전패하고 말았다. 두가지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첫번째는 왜 리틀 감독은&#39고의 4구&#39를 지시했을까. 카를로스 벨트란에게 안타를 맞아도 2-2 동점이다. 대답은 두번째 의문과 연관된다. 매덕스가 갑자기 교체를 요청하니까 불펜에서 몸 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도 납득하기 어렵다. 두번째는 매덕스가 왜 교체됐는가이다. 고의 4구 포함 72개 밖에 던지지 않았다. 경기 중에는 감독이 작전상 교체를 단행한 것으로 생각했으나 경기 후 매덕스가 피곤하다며 교체를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6회초 런다운 주루 플레이를 해 힘들었다는 것을 인정해도 자진 강판할 정도로 지쳤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를 놓고 LA 타임즈 컬럼니스트 티 제이 사이머스는 &#39왜 매덕스의 별명이 (한벌 물면 놓지 않는) &#39불 독(Bull dog)&#39이 아닌지를 알겠다&#39고 무책임함을 지적했다.로스앤젤레스= 장윤호 기자 2006.09.1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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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독’에 물린 ‘매드 독’과 다저스 구단

LA 다저스 선수단 분위기는 외형적으로 평온하다. 7일(이하 한국 시간) 플로리다와의 원정 경기에서 7-3 승리로 9연승을 내달린 후 홈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최하위팀 탬파베이에서 지는 것에만 익숙해 있다가 지난 1일 다저스로 이적한 내야수 훌리오 루고가 놀랐다. 빅 마켓(big market)에 연고를 둔 다저스 급의 선수들은 9연승에도 덤덤해야 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보면 훌리오 루고의 생각은 착각인지도 모른다. 그렉 매덕스를 데려온 트레이드와 연승에 가려져 터질 것이 터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현재 다저스는 ‘크레이지 독(Crazy Dog)’에 ‘매드 독(Mad Dog)’은 물론 구단 전체가 물려 있는 형국이다. 감독에 대한 선수의 항명 사건을 어영부영 넘어 가고. 동료의 수비에 대해 손가락질을 하는 사건까지 이어졌는데 징계 타이밍을 놓친 구단과 ‘매드 독’이라는 별명의 그렉 매덕스가 함께 물려 있다.트레이드 마감일인 1일 다저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그렉 매덕스는 4일 신시내티전에서 배번 36번을 달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렉 매덕스하면 31번을 떠올리는 팬들은 어리둥절했을 것이다.이유는 분명했다. 가이드 북을 뒤졌더니 31번을 올 시즌 두 차례나 ‘크레이지’한 일을 벌인 투수 브래드 페니가 달고 있었다. 항명에 손가락질까지 했는데 그렉 매덕스가 뭐 대수였을까.그렉 매덕스는 메이저리그에서 31번을 달고 4542⅔이닝을 던지며 3133 스트라이크아웃과 327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36번으로는 이제 1승에 자신의 통산 328승째를 올리고 있다. 다저스 구단은 매덕스가 오면 페니가 양보할 것으로 쉽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통이 있는 팀에 기강도 서 있을 때의 얘기다. 페니는 “내가 좋아하는 다른 번호를 누가 양보해주면 나도 매덕스에게 31번을 주겠다”고 버티고 있다. 하기는 케니 로프턴의 수비에 손가락질한 일도 LA 다저스 그래디 리틀 감독은 페니에게 신시내티에서 선수단 전체에게 저녁 한번 사게 하는 것으로 넘어가게 했다니 뭐가 되겠는가. 어쨌든 팬들은 페니가 압력에 굴복해 31번을 양보할 것인가 아니면 굳세게 버틸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드라마틱한 일이 벌어진다면 매덕스는 김병현과 선발 격돌하는 9일 콜로라도전에 다시 31번을 달고 나올지 모른다. 그 때까지 못 빼앗아 오면 징계처럼 또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다.로스엔젤레스= 장윤호 기자 2006.08.0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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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와 매덕스 누가 더 ‘매드(mad)’ 할까?

콜로라도 로키스의 BK 김병현(27)이 9일(이하 한국 시간) 오전 11시10분 다저스타디움에서 LA 다저스로 이적한 &#39매드 독&#39 그렉 매덕스와 선발 맞대결을 펼친다. 승부 근성이 강한 매덕스는 한번 물면 놓지 않을 정도여서 &#39매드 독&#39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누가 더 매드(mad)할까? &#39매드(mad)&#39에 관한 한 김병현도 그렉 매덕스에 뒤지지 않는다. 아버지가 카지노 딜러였던 그렉 매덕스는 포커, 김병현은 만화에 미친다. 야구만 놓고 보자. 김병현은 5월29일 샌프란시스코 AT&T 파크 원정 경기에서 4회 배리 본즈와 정면 승부를 하다가 중월 2점 홈런을 허용했다. 배리 본즈의 통산 715호였다. 1회 배리 본즈를 볼넷으로 내보냈던 BK는 팀 동료 선배인 김선우가 &#39한번 붙어주라&#39는 의미의 말을 하자 정면 승부를 펼쳤다. 투 스리 풀카운트 접전을 하다가 6구에 홈런을 맞은 김병현은 경기 후 태연하게 &#39배리 본즈가 잘 쳤다&#39는 말로 모든 것을 정리했다. 그 만큼 김병현의 승부 근성은 &#39매드&#39 이상이다. -통산 328승-43승, 시즌 10승-7승시카고 커브스에서 LA 다저스로 옮긴 그렉 매덕스는 첫 등판인 4일 신시내티전에서 6이닝 무안타 3포볼, 3탈삼진의 투구 내용으로 자신의 시즌 10승째(11패, 방어율 4.49)를 따냈다. 하지만 매덕스는 6이닝 노히트 노런을 기록 중이었으나 폭우로 인해 경기가 46분간이나 중단돼 기회를 놓쳤다. 매덕스는 사이영상을 4차례나 수상했지만 노 히터(no-hitter)는 없다. 김병현도 폭발적인 상승세이다. 7월29일 샌디에이고전에서 7⅔이닝 5안타 무실점으로 시즌 6승, 3일 밀워키전서 8이닝 7안타 1실점으로 7승째(6패, 방어율 4.57)를 올렸다. 최근 2경기에서 15⅔이닝을 던지며 1점 밖에 주지 않았다.  LA 다저스와 콜로라도가 속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는 어느 팀이 1위를 차지할 지 모를 안개 판세이다. 지구 팀간의 맞대결 결과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그렉 매덕스와 김병현의 선발 격돌은 빅 카드이다. 로스앤젤레스=장윤호 기자 2006.08.0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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